seohchoi(이하 seoh, 왼쪽)
13살 때 C언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프로그래밍을 좋아해서 내린 결정이었죠. 그런데 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니다 보니 '아 나는 아직 어리고 재미있게 놀기에도 바쁜 나인데, 왜 이렇게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에 그만뒀어요. 그 후에도 여전히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한 번 그만두니 다시 손에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프로그래밍 대신에 소설을 쓰거나 번역 일을 하고, 영상 편집도 하면서 살다가, 42서울 공고를 인터넷에서 보게 됐어요. '다시 한번 프로그래밍을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지원했고, 운 좋게도 온라인 테스트에 합격해서 피신을 시작하게 되었죠.
mseo(이하 m, 오른쪽)
저는 42서울 들어오기 전까지는 컴퓨터의 ㅋ도 몰랐었어요. 전공도 건축이고, 프로그램을 쓰기만 했지 만드는 것과는 관련이 전혀 없었어요. 대신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건축 분야를 들어갈지 아니면 다른 분야를 들어갈지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죠. 그때 했던 아르바이트가 물건을 배달해주는 일이었어요. 주문을 받으면 담고 포장해주는 것까지 모두 다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구조였는데, 마침 제가 딱 일을 시작했을 때 업체가 광고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확 바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갑작스럽게 필요하게 되었고, 그때 제가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물론, 있는 자료를 가공해서 쓰기 편하게 만드는 수준이었지만요. 구글링도 하고 인터넷도 찾아가면서 겨우겨우 만들었는데 엄청 재밌는 거예요! 그때부터 '컴퓨터를 한 번 배워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42서울 모집 공고를 보게 되어서 신청하게 되었죠.
m
온라인 테스트 때는 엄청나게 긴장했어요. 테스트 내용도 아예 비밀이다 보니 훨씬 긴장됐고, 특히 42서울 전에 SSAFY 시험을 먼저 보고, 호되게 혼이 난 상태였거든요. 엄청 겁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 시험을 시작했더니 막상 생각했던 만큼 어렵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긴장은 사라졌지만, SSAFY의 경험 때문에 온라인 테스트 결과를 확신하진 못했었죠.
seoh
저는 1기 1차라서 라 피신이 전일제였기 때문에, 피신을 위해서 고시원 방을 잡았어요. 그 당시 방에 돌아와 뿌링클을 시켜 먹은 기억이 가장 강렬하네요. 당시 라 피신은 루머들도 진짜 많았어요. 공부만 하기도 힘든데 루머까지 신경 쓰다 보니 더 피곤했던 것 같아요. 그런 소용돌이 같은 곳에서 30일을 버티다가, 본과정에 와서는 주도권이 저한테 오니까 조금 더 맨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아요. 만약 누가 라 피신을 다시 하라고 묻는다면… 본과정도 치열한데 굳이 다시 해야 할까요?
m
저도 동감해요. 처음에는 라 피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차피 본과정에서도 블랙홀 벗어나려고 매일 코딩하는데… 굳이?'란 생각이 드네요. '맨날 코딩하고 있는데 이게 라 피신과 뭐가 다른가'란 생각이 지금 들어요.
seoh
라 피신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체력 관리였던 것 같아요. 이렇게 오랜 시간 밖에서 공부한 적은 처음이라, 체력이 달리는 걸 느낌과 동시에 정신도 같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뒤늦게 찾은 적성일수록 진심으로 공부하게 된다고. 저도 비슷했어요. 어릴 때 프로그래밍이라는 적성을 찾았지만,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라 피신이라는 좋은 기회를 접한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힘들어도 한 달간 진심으로 프로그래밍에 집중했어요. 오랜 시간 다른 일을 하며 적성을 계속해서 찾았지만, 결국 가장 재밌는 건 프로그래밍이더라고요. 지금은 프로그래밍만이 내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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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히려 반대 케이스에요. 첫 주, 둘째 주가 제일 힘들었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왔어요. '터미널을 더블 클릭하면 검은 화면이 뜬다.' 정도만 알고, 명령어들조차도 하나하나 쳐보면서 의미를 알아갔고요. 그런 상황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을 응시조차 실패했어요. 당시에는 왜 그런지 도저히 몰라서 정신력이 엄청나게 무너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팀 프로젝트인 RUSH를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팀원 중 한 분이 하룻밤 사이에 코드를 완성하신 거예요! 그 코드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면서 처음으로 코드 전체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게 저한테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3~4주 차부터는 오히려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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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이 되면서 힘든 건 집에는 Mac이 없다는 점이죠! 집에는 Mac이 없기 때문에 클러스터와 같은 환경을 만들 수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맥북을 샀어요. 리눅스 가상머신으로 버티더라도 언젠가는 맥북을 사게 된답니다.
seoh
비대면 동료학습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건 C언어로 레이 캐스팅 엔진을 만드는 cub3d 과제부터였어요. ft_server까지는 혼자라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어떻게든 풀 수 있었기 때문에 클러스터가 닫히는 동안 계속 집에서 혼자 달리며 과제를 풀어나갔어요. 하지만 문제는 cub3d부터였어요. 그때쯤 코로나로 닫혀있던 클러스터가 열렸는데, 클러스터에 가도 너무 오랜만의 방문이다 보니 동료학습을 같이할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피신을 같이하셨던 분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또 그 당시엔 지금처럼 슬랙에서 동료학습자를 구하는 문화가 활발하지 않다 보니까 결국 클러스터가 열려도 혼자서 cub3d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cub3d를 시작할 즈음에는 200일 넘게 남아있던 블랙홀이 끝날 때는 60일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물론 중간에 다른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cub3d에서만 3개월을 쓴 거죠.
seoh
42서울 x CJ올리브네트웍스 기업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경험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그때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개발, UI/UX 디자인, 그리고 기획 직군이 있었어요. 사실 저는 장기적으로는 개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기획이나 UI/UX 디자인 직군에 지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개발해본 건 42서울에서 배운 게 전부이기도 했고, 또 printf를 구현하는 과제인 ft_printf에서 파싱할 때 화이트보드에 그려가면서 구조를 짜는 게 너무나도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기획 직군에 지원을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고민하다가 멘토님께 여쭤봤는데, '개발자도 기획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머릿속에 전구가 켜진 듯 했어요.
m
저는 게임 관련한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요. '우산 금지'라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인디게임이 있는데, 이 게임은 스토리, 기획, 개발 등 게임 전체를 팀원 4~5명이 만들었어요. 그런데도 게임성이 상당히 괜찮거든요. 그런 식으로 소규모 팀으로 자그마한 인디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그 목표 달성을 위해 토이 프로젝트들을 여러개 해보고 싶어요.
seoh
다음에 뭘 할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프론트엔드 쪽일 것 같아요. 저는 그림을 그린 경험이나 영상을 만든 경험이 있다 보니까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고, 그 때문에 항상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디자인하기 위한 도구로 '코딩'이라는 게 나타난 거죠. 그래서 코드로 시각적인 것을 그려낼 수 있는 프론트엔드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아직 완벽하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죠!
byukim
jwon, ye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