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영화기획을 담당하고 있어요. 42서울에 들어오기 전에는 컴퓨터라고는 아예 몰랐어요. 남편이 IT 쪽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재밌어할 것 같다며 추천을 해주었답니다. 지원할 당시 코딩 경험은 전혀 없었고, 피신 시작하기 전에 C를 살짝 본 정도가 전부였어요. C언어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거죠.
피신에 붙을지 떨어질지 모르니까 함부로 회사를 휴직하거나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회사 대표님한테 ‘인공지능 영화기획’ 얘기를 하면서 열심히 설득했죠. 다행히도 대표님이 이전에도 <점프 투 파이썬>을 구입할 만큼 컴퓨터나 통계 분석 쪽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제 의도에 공감하고 한 달의 시간을 허락을 해주셨죠. 어렵게 들어왔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절박한 심정이 생겼어요.
피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회사의 중요한 행사와 피신 일정이 겹친 적이 있어요. 피신에 참여하느라 행사에 못 갔는데, 사실 그 행사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이었어요. 회사에서 기생충의 제작에 참여해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갈 기회가 생겼던 거죠. 막상 기회를 놓치니까 마음이 아프긴 했어요. 1기 대신 조금 늦게 피신을 진행하는 2기에 지원할 걸 그랬나 후회도 했죠. 아무튼 그런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저는 피신을 아주 열심히 했답니다. 수상 소식 발표되는 순간에도 기뻐할 겨를 없이 세그폴트를 잡고 있었어요.
C언어를 처음 경험했을 때는 힘들긴 했지만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재밌었어요. 기존의 것들과 아예 다른 개념을 배우다 보니 뇌가 상쾌해지더라고요. 저는 기획을 할 때 통계나 논리적 분석보다는 직관이나 감에 의존해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무언가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재밌으니 남들도 재밌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42서울에서는 컴퓨터가 생각하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컴퓨팅적 사고를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나이가 좀 있는 편이라, 피신에서 체력적인 부담이 컸어요. 특히 러시는 스케줄을 팀원과 맞춰야 하기도 하잖아요? 20대이신 다른 팀원들은 팔팔하게 새벽 3~4시까지 과제를 진행하는데, 저는 그때쯤 되면 뇌가 정지하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또 다른 어려움은 육아였어요. 자녀가 있거든요. 물론 피신 때는 남편이 더 도와주기는 했지만, 피신과 동시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42서울 이후 실제 개발자로 현장에 뛰어들 수 있을지는 감이 잘 안 와요. ‘관리 감독해야 하는 나이에 가까운데 실무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마음이 급하니 C 과제가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애초에 꿈꿨던 ‘인공지능 영화기획’을 위해서 파이썬 같은 다른 언어들을 빨리 공부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42서울에서 왜 C부터 배우도록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CPP 모듈 과제를 할 때, malloc이랑 free를 안 하고 new와 delete만 쓰면 된다는 걸 알고 C보다 훨씬 더 편했거든요. 이와 동시에 CPP를 먼저 공부했다면 메모리에 대해 훨씬 덜 민감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2서울은 컴퓨터를 전혀 전공하지 않고 문과생으로서 오래 살아오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기회비용이 큰 사람이었지만, 아직 시간이 여유가 있으신 학생분들에게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일 것 같아요. 특히 비전공자가 코드리뷰를 경험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에요. 실무에서는 빈 화면에 코드를 작성하기보다는 미리 써놓은 코드를 이해하고 그 코드를 편집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하더라고요. 비슷한 경험을 팀프로젝트인 minishell에서 해볼 수 있었어요. 팀원의 의도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코드에 맞춰서 제 코드를 쓰다 보니, 코드리뷰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42서울의 동료평가의 의도도 조금은 이해한 것 같아요.
byukim
j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