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서울에 오기 전에는 번역사였어요. 프리랜서 번역사로 일하다가 서른 즈음 되었을 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번역한 책이나 문서들을 사람들이 읽는 모습을 보면 번역사가 멋져 보일 수도 있지만, 전망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불안정했거든요. ‘과연 미래에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아 보였어요.
그렇게 생각한 한 가지 이유는, 기술이 번역사를 대체하는 모습을 본 것이 컸어요. 정부 기관과 연계된 업체에서, AI 학습용 데이터를 모으는 일을 했었어요. 이전에는 사람이 쓴 문서를 번역했다면, 당시에는 AI가 번역한 글을 사람이 번역한 것처럼 다듬어주는 일을 했는데, 이런 발전상을 지켜보면서 내 입지를 내가 직접 없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번역기에 쓰이는 언어 엔진들을 보았을 때, 컴퓨터가 도와주며 사람이 번역하는 모습이 아니라, 컴퓨터 자체가 번역하는 미래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면 ‘20년 후에 나는 설 자리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아니라고 생각했고, 만약 기술이 이 분야를 잠식한다면, 차라리 내가 기술을 배워서 살아남겠다고 생각했어요.
번역가로서 미래에 못 살아남을 것 같다면 개발자가 되보자고 생각했죠. 물론 그전에도 C언어를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NHN NEXT에 지원하기도 할 정도로 개발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고요!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42서울이라는 기회가 왔죠. 19년도 말에 지원서를 넣고 온라인 테스트를 풀었어요. 대기자가 1500명이더라고요. 그래서 안 뽑힐 것 같아 대신 codestates의 부트 캠프를 했는데, 작동원리를 모르는 채 코드를 짜다 보니 ‘이렇게 공부하면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늦게나마 42서울의 2기가 되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회피 기질이 있어요. 힘든 일을 보면 도망치고 싶어져요. 라 피신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진짜 많이 했고, 첫 시험이 끝나고 주변에 도망치신 분들도 많이 봤어요. 그래서 ‘라 피신을 포기하고 번역사로 돌아가도 된다’ 같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힘들고, 또 큰 도전이었어요. 반대로 잦은 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더 좋았어요. 코드를 작성할 때도 동료학습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옆 사람 붙잡으면서 ‘이게 뭐예요?’라고 질문하고, 과제가 막히면 평가하면서 오히려 질문하거나 코드를 사진으로 찍기도 했죠. 동료들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체력적인 부담은 훨씬 덜했고, 나 자신이 유혹을 견뎌내는 정신적인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훌라라는 카드 게임을 많이 했었어요.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대학교 1학년 때 남자 셋과 같이 기숙사에 살았었어요. 근데 밤에 있다 보면 야식이 당길 때가 있잖아요. 그때 훌라를 통해 야식 내기를 하기도 했었어요. 1등을 하면 치킨값을 면제해줘서, 그 친구들이 저를 많이 먹여 살렸죠. 거의 반 이상은 공짜 치킨을 먹었을걸요? 그 후에 훌라와 비슷한 루미큐브에 입문하면서 대회도 몇 번 나가게 되었죠.
많은 일 중에서 번역사로 일한 계기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처음에 아랍어에 관심이 있어 어문학과에 갔을 때는, 그냥 외국어를 잘하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학부에서 고학년이 되었을 때 한국에는 한국어로 된 아랍어 학습자료가 많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랍어를 깊게 배우고 싶은 분들은 아랍어 그 자체뿐만 아니라 영어도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또 토착어나 사투리 같은 구어체나 심화한 자료를 찾을 때면 영어는 항상 진입장벽을 더 높이고는 했죠. ‘나는 아랍어를 배우고 싶은데 영어를 몰라서 더 깊이 공부하는 게 힘들어’라는 반응을 보고, 그 당시부터 언어의 장벽을 허물 수 있도록 번역을 통해 많이 가르쳐주고 도와주었던 거 같아요. 실제로 학부 2학년에 유학을 다녀오면서 프리랜서로 번역을 시작했고요!
42서울을 다니면서 앞으로 어떤 개발자로 성장해야 할지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부트캠프를 막 다닐 때는 그냥 현실적으로 '아무 데나 취업해서 다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42서울에서 멋진 동료들을 만나고 나서 '이전에 고이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펼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옛날의 저는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사회가 치르는 비용으로 먹고살았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제 기술자로서 제가 원하는 길은 이런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영어 때문에 아랍어 공부가 힘들었던 동기들을 바라보던 저로 돌아가서' 그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현재는 백엔드 파트를 공부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NLP를 배우면서, 미래에는 기계번역 쪽에서 일하면서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에 기여하고 싶어요!
이전에 C언어를 만져보다가 포기한 건 주변에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같이 공부할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뛰는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42서울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우리가 카뎃들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이라고 부르잖아요? 같이 여행할 사람들을 찾고 싶다면, 42서울이 딱 맞을 거예요. 혼자서 C언어를 공부했던 제가 42서울을 5년만 빨리 왔더라면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같이 달릴 동료를 찾고 싶은 분들에게 42서울을 가장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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